블록체인은 탈중앙화를 실현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로 주목받아 왔지만, 실제로 작동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한계가 존재한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이슈가 바로 ‘블록체인 트릴레마(Blockchain Trilemma)’이다. 이는 블록체인 시스템이 동시에 세 가지 요소인 확장성, 탈중앙성, 보안을 모두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개념이다. 현실에서는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강화하면 다른 두 요소가 약화되는 경향이 있어, 많은 프로젝트들이 균형점을 찾기 위해 다양한 기술적 시도를 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블록체인 트릴레마의 개념과 각각의 요소가 가지는 의미,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 접근 방법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1. 확장성: 빠르고 많은 거래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
확장성은 블록체인이 실생활에서 사용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이는 네트워크가 시간당 얼마나 많은 트랜잭션을 처리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며, 대규모 사용자와 복잡한 애플리케이션을 감당하려면 높은 수준의 확장성이 필요하다. 비트코인의 경우 초당 평균 7건, 이더리움은 약 15건 정도의 거래 처리 속도를 보여주는데, 이는 기존의 중앙 집중형 결제 시스템인 비자카드나 페이팔의 수천 건 수준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이러한 낮은 처리 속도는 사용자 경험을 저해하고, 거래 수수료를 폭등시키며, 결국 대중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확장성 향상 기술들이 개발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레이어 2 설루션인 롤업(Rollup), 채널(Channel), 플라스마(Plasma) 등이 있다. 이 기술들은 메인체인의 부담을 줄이고, 거래를 외부에서 처리한 후 최종 결과만 블록체인에 기록함으로써 처리 속도와 비용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또한 샤딩(Sharding) 기술도 주목받고 있는데, 이는 전체 블록체인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 병렬로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전체 네트워크의 트랜잭션 처리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 하지만 확장성만을 강조하면 네트워크 참여자의 수를 제한하거나 데이터 처리 속도에 의존하는 구조가 되기 쉽고, 이는 결국 탈중앙성과 보안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확장성은 반드시 다른 요소들과의 균형 속에서 접근되어야 하며, 기술의 선택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2. 탈중앙성: 중앙 권한 없이 모두가 참여하는 구조
탈중앙성은 블록체인의 철학적 근간이자 실질적 구조를 정의하는 핵심 요소다. 이는 특정 중앙기관이 존재하지 않고, 누구나 네트워크에 참여하여 데이터를 저장하고 검증하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를 의미한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초기 설계는 바로 이러한 탈중앙성을 가장 중시한 구조였다. 많은 수의 노드가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그 어떤 개인이나 기관도 블록체인의 운영을 독점하지 못하게 설계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탈중앙성이 높을수록 합의 과정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데이터 전파에 소요되는 비용이 커진다는 점이다. 이는 곧 확장성과 성능의 저하로 이어진다. 특히 탈중앙 구조에서는 모든 노드가 데이터를 공유해야 하므로 블록 크기 증가, 처리 시간 지연, 높은 수수료 등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에 따라 일부 프로젝트는 노드 수를 줄이거나 검증인 집단을 제한함으로써 속도와 성능을 확보하려고 시도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탈중앙성을 희생하는 방식이 된다. 실제로 최근 등장한 많은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높은 TPS를 구현하기 위해 위임지분증명(DPoS), BFT 등 상대적으로 중앙화된 합의 알고리즘을 택하고 있다. 이는 트릴레마의 전형적인 사례로, 성능을 위해 구조적 탈중앙을 일정 부분 포기한 경우다. 진정한 탈중앙성을 유지하면서도 빠른 속도를 구현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프로토콜 연구와 실험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세로(Sero), 알레오(Aleo)와 같은 블록체인은 ZK 기술을 활용해 탈중앙성과 프라이버시를 동시에 유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며, 세포체인(Cell Chain), DAG(Directed Acyclic Graph) 구조도 대안으로 연구되고 있다. 요약하면 탈중앙성은 블록체인의 철학적 정체성이자 핵심 구조이지만, 기술적으로는 많은 트레이드오프를 수반한다. 이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트릴레마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다.
3. 보안: 자산과 거래를 안전하게 지키는 신뢰 기반
보안은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신뢰와 존속을 결정하는 절대적 요소다. 블록체인의 보안성은 네트워크가 외부 공격, 내부 조작, 시스템 오류로부터 자산과 거래를 얼마나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대표적인 보안 위협으로는 51% 공격, 더블 스펜딩(double spending), 스마트 계약 취약점 등이 있다. 비트코인은 작업증명(PoW) 방식을 통해 보안을 강화하며, 네트워크의 과반수를 장악하지 않는 한 해킹이나 변조가 불가능한 구조를 가진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확장성과는 상충하는 단점이 있다. 이더리움은 2022년 머지(The Merge)를 통해 지분증명(PoS)으로 전환하면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도 보안을 유지하려는 구조적 변화를 시도했다. 보안성을 강화하는 기술로는 영지식증명(ZKP), 안전한 스마트 계약 개발 언어(Solidity 대안), 멀티시그(Multisig), 하드웨어 지갑 통합 등이 있으며, 블록체인의 레이어 설계에서도 보안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된다. 블록체인의 보안은 단지 코드와 암호화 수준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 설계, 합의 구조, 네트워크 참여자들의 인센티브 구조까지 포함하는 복합적 개념이다. 예를 들어 보안성을 너무 강화하면 네트워크 참여의 문턱이 높아지고, 이는 곧 탈중앙성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너무 많은 검증 단계를 요구할 경우 처리 속도가 낮아져 확장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처럼 보안은 모든 것을 지키는 동시에 모든 것을 제한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특히 최근에는 블록체인을 이용한 범죄, 사기, 익스플로잇 사건이 증가하면서 보안에 대한 신뢰가 블록체인 채택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앞으로의 블록체인 기술 발전은 보안을 가장 높은 우선순위에 두되, 사용자 경험과 탈중앙의 철학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블록체인 트릴레마는 확장성, 탈중앙성, 보안이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서로 충돌하며 완벽한 균형을 이루기 어렵다는 개념으로, 대부분의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반드시 직면하게 되는 근본적인 과제다. 각각의 요소는 블록체인의 기능과 철학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이 중 어떤 것을 우선시할 것인가는 프로젝트의 방향성과 성격을 결정짓는다. 일부 프로젝트는 확장성을 강조해 빠르고 저렴한 거래를 지향하며, 또 다른 프로젝트는 철저한 탈중앙성과 보안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성공적인 블록체인 생태계는 이 세 가지 요소를 조화롭게 통합할 수 있는 기술적 해법을 제시해야 하며, 이를 위해 다양한 합의 알고리즘, 확장성 기술, 보안 프로토콜들이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트릴레마는 블록체인 발전의 걸림돌이 아니라, 그 진화를 이끄는 동력이기도 하다. 미래의 블록체인은 이 세 가지 요소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새로운 설계 패러다임을 통해 지금보다 더 넓은 분야에서 활용될 것이다.